본문 바로가기
사회

의료계 파업과 공공의료 시스템의 위기

by 민브리핑 2025. 5. 29.

2024~2025년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 및 전임의의 대규모 사직 사태는 대한민국 공공의료 시스템의 붕괴 위기를 불러왔다. 정부와 의료계 간의 대립은 단순한 인력 증원 문제가 아닌, 의료의 질과 구조 전반을 둘러싼 근본적인 갈등으로 비화되었고, 국민 건강권의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

 

 

🏥 1. 의대 정원 확대 발표와 의료계 집단 반발

의료계 파업과 공공의료 시스템의 위기
의료계 파업과 공공의료 시스템의 위기

이번 발표는 단순한 수치 조정이 아니라, 향후 수십 년간 대한민국 의료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중대한 정책 변화였다. 정부는 의사 수 부족 문제를 단순히 '공급의 부족'으로 해석했지만, 의료계는 질적 성장 없는 양적 확대에 대해 근본적인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수련병원의 교육 여건과 지방의료기관 인프라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였다. 전공의들과 전임의들은 자신들이 의료 시스템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느꼈고, 이는 사직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졌다.

2024년 2월, 보건복지부는 의사 수 부족 해소와 지역 의료 강화, 필수과목 전공의 확보를 위해 의대 정원을 2,000명 이상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기존 정원(3,058명)의 60% 이상을 증원하는 역사적 규모였다. 정부는 특히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기피과를 중심으로 인력을 확충하려는 계획을 내세웠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를 '졸속 정책'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은 충분한 의료 인프라 구축, 교육 역량 강화, 전공과목의 근본적 개편 없이 단순 증원만 이루어질 경우 의료의 질 저하와 일자리 포화, 수도권 쏠림현상만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수련 체계가 이미 포화 상태이며, 교육 질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증원은 전공의들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무더기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나면서 현장 의료공백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중심으로 주요 대학병원의 필수 진료 기능이 마비되었고, 일반 외래 진료는 물론 수술 일정도 대거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의료계는 ‘총파업’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전국적 규모의 업무 중단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의료계의 반발로 축소할 수 없는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환자 단체들은 생명권을 위협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책임을 강하게 추궁했고, 일부 국민은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을 '직업윤리의 상실'로 비판하기도 했다.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사회 전체가 깊은 혼란과 불안을 겪게 되었다.

 

 

⚠️ 2. 의료공백과 국민 건강권 침해의 현실

응급의료체계는 그 자체로 정밀한 톱니바퀴처럼 작동해야만 하는 구조인데, 전공의 부재는 그 균형을 붕괴시켰다. 의사 한 명 한 명의 공백이 고스란히 응급상황 대응 실패로 이어졌고, 의료진의 과로 또한 가중되었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의 의료기관에서는 단 한 명의 전공의도 확보하지 못해 ‘의료 사각지대’가 현실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더 이상 의료의 공공성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고, 의료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 요구가 거세졌다.

2024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전공의 사직 사태는 대한민국 공공의료 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대학병원에서 필수 인력을 담당하는 전공의가 빠져나간 상황은 고스란히 응급환자, 중증환자, 소아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다수에서 중환자실 병상이 일시 폐쇄되었으며, 소아응급실은 야간 진료를 중단하거나 제한 운영에 들어갔다.

정부는 군의관과 공중보건의를 투입해 공백을 메우려 했지만,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도 대응에 한계가 뚜렷했다. 일부 응급환자들이 병원 간 이송 중 사망하거나, 수술 일정 지연으로 상태가 악화되는 사례들이 속출하면서 언론과 여론의 압박은 거세졌다. 또한 지역 중소병원의 환자 대기 시간은 기존의 3~4배 이상으로 늘어났고, 상급병원 전원을 받지 못한 환자들이 집에서 대기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히 한 세대 의료인력의 저항을 넘어서, 한국 의료의 구조적 불균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상급병원과 일차의료기관 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응급실 쇼크’는 언론을 통해 국민적 공포로 확산되었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의료 시스템의 붕괴가 시작됐다'는 자조 섞인 평가도 나왔다.

결국 국민 건강권을 두고 벌어진 이번 사태는, 의료가 단지 시장 원리나 정책 조정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공공재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제도와 철학 모두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 3.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과 제도 개편의 과제

정부의 일방적 발표 이후 의료계는 소통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며 체계적인 대화를 요구해왔다. 단순히 정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 내의 불균형과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정책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젊은 의사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생존 경쟁 속에서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갈등의 장기화는 필연적으로 의료현장의 피로도와 환자 신뢰도 모두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무단 이탈자에 대한 면허 취소 및 법적 조치를 경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강경 대응은 의료계 내부의 반발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대한의사협회는 ‘대화 없는 일방적 통보’라며 단식 농성과 거리 집회를 이어갔고, 젊은의사협의회는 아예 '해외 유출'을 고려 중이라는 입장까지 밝혔다.

한편 국회에서는 중재 역할을 자처하며 ‘의료개혁특별위원회’ 구성 논의가 시작됐다. 여야는 필수과목 기피 해소 방안, 지역 공공의료 강화, 의료수가 현실화, 수련 과정 개선 등의 사안을 중심으로 개혁 패키지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의료계 일부 원로 교수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정책 결정에 의사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중재자 역할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은 단지 정책의 디테일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로까지 확산된 상황이다. 지난 수십 년간 누적되어온 정책 불신, 수가 체계에 대한 회의, 의사 직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등 복합적 요인들이 얽혀 있어 갈등의 해결은 단기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환자를 중심에 둔 공감적 정책 설계와 지속 가능한 의료 철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의료 접근성, 공공성과 질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근본적 제도 혁신이 없이는 제2, 제3의 의료 공백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적 책무를 다시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